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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eaker talks about how memories are connected to spaces and how different spaces hold different meanings based on experiences. They mention their own memories and experiences at their university campus, specifically mentioning certain locations such as the underground of building 14 and the central library. They also reflect on their journey of faith and how God has been with them throughout their time at the campus. They welcome the graduating students and encourage them to continue their journey with God,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their faith and the memories they have made at the university. They conclude with a prayer, asking God to continue guiding and blessing them. 우리의 추억은 공간에 깃들어 있습니다. 마치 선물을 포장하듯 기억도 그 일이 일어난 공간에 담아둡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그때의 장소가 생각납니다. 함께한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공간도 추억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추억을 렌즈 삼아 그 공간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그 공간에 온 것만으로도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간은 추억과 연결됩니다. 같은 공간도 경험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됩니다. 느낌이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제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공간과 신입생 여러분이 경험하고 있는 이 공간, 그리고 재학생분들이 경험하는 공간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황량한 캠퍼스이고 아직은 관악산의 한기가 느껴지는 공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애틋하고 가슴 속 한편이 뜨거워지는 자리입니다. 저는 앞으로 여러분이 4년을 머물게 될지, 10년을 머물지, 아니 이곳에서 평생을 머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 5년이 지나고 나면 여기 있는 대부분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서울대는 그저 이력서에 쓰는 단어로 남을 것입니다. 젊은 날 추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가슴 한편에 접어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도 어떤 장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공간을 담긴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야곱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남쪽 브엘세바를 떠나 멀리 북쪽에 있는 하란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동안 부모님 품에서 지냈지만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익숙했던 고향을 떠나 낯선 하란으로 가야 합니다.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460km를 가야 합니다. 우리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보다 더 가야 합니다. 물론 지금처럼 차가 있으면 하루면 갑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어서 가야 합니다. 부지런히 걸어도 두 주는 가야 합니다.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상당한 짐을 챙겨야 했을 겁니다. 가본 적도 없는 길을 홀로 가야 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누가 도와줄 수 없습니다. 누가 대신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기쁘고 즐거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형 에서가 야곱에게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형과의 갈등이 폭발했고 또 형이 죽이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형이 쫓아와 칼을 휘두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필요한 짐만 챙겨 빠져나왔을 겁니다. 제대로 쉬지도 않고 최대한 멀리 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걷다 밤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고 거기서 잠시 묵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낯선 곳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 눈에 띄었다간 에서의 추격을 받으니 그런 곳은 피해야 합니다. 아는 곳도 아니고 와본 적도 없지만 거기서 멈춰야 했습니다. 잠자리가 편치 않았습니다. 단지 베개가 돌베개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아마 뒤쪽에서 오는 공격을 막으려고 바위에 머리와 등을 기댔을 겁니다. 바위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을 겁니다. 부모님도 그립고 또 형에서도 생각났을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 막막합니다. 다시 열심히 달려왔는데 무언가에 이루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쫓겨서 달려온 길이었습니다. 겨우 달렸는데 이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낯선 곳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여기 있는 신입생 분들도 부모님의 품을 따라 여기 와 있습니다. 서울에서 다닐 분도 있겠지만 지방에서 오신 분도 있을 겁니다. 부모님이 기숙사 방도 보시고 새 이불도 사서 놓고 가셨을 겁니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홀로 잠을 자려고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 겁니다. 괜히 새 이불이라 그런가 침대가 밖이어서 그런가 불편합니다. 물론 이불이나 침대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여기 온 게 맞나? 그 생각도 할 겁니다. 더 열심히 하면 어땠을까? 어쩌면 쫓겨서 여기까지 온 것도 같습니다. 멈추면 따라잡힌다는 생각에 늘 달렸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쉰 적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지, 얼마 만큼 뛰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대에 와보니 건물들은 너무도 위압적입니다. 큼직큼직한 콘크리트 덩어리들, 그리고 직선의 철제 구조물, 빛나는 유리 때문에 더욱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4월이 오기까지는 그럴 겁니다. 이미 등록했으면서도 반수를 해볼까? 그냥 다닐까? 고민한 이도 있을 겁니다. 등록을 걸어놓고 학원을 다닐까? 아니면 그냥 다닐까? 한 학기만 다녀볼까? 고민한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친구를 사귀어야 될지, 사람들을 만나야 될지 판단이 서지 않을 겁니다. 일단 환영회도 갑니다. 모임도 나가지만 조심스럽습니다. 한참을 웃고 떠들고 올 때도 있지만 방에 들어오면 기분이 축 처지게 됩니다. 불 꺼진 방이 싫어서 일부러 불을 켜놓고 나갈 때도 있습니다. 듣지도 않는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관악산은 왜 이리 추운지. 같은 서울인데도 여기는 더 추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낯선 곳에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면 야곱도 겨우 잠을 청했습니다. 그저 가져온 짐벗다리를 껴안고 잠을 잤을 겁니다. 그러다 꿈을 꾸게 됩니다. 큰 사닥다리. 계단으로 번역해도 좋을 겁니다. 땅에서 하늘로 큰 계단이 있고 거기 하나님의 사자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알지 못했지만 그곳은 하늘과 연결된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 주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겁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하나님, 어머니의 하나님이었지만 자기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의 믿음으로 살아왔던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겁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를 소개하시는데 막연히 멀리 계신 하나님,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지금 약속을 주십니다. 그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이 낯선 곳에서 하나님을 뵙고 그분을 경험하게 된 겁니다. 처음으로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하였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성공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침묵하는 분, 기도하지만 들으시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신앙이란 것도, 장자권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무언가 움켜쥐기 위해 내가 붙잡았던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사기에 말했던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5절 말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내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아멘. 야곱에게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홀로 가는 길,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겠다 약속하십니다. 물론 다른 복의 내용도 있지만, 너를 떠나지 않겠다 하신 그 약속이 사실 모든 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제 야곱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여하께서 여기 계시는구나,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의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습니다. 벧은 집이고 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어제 잠들기 전까지는 이곳은 낯설고 두려운 곳이었지만 오늘 이후로 야곱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곳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한 곳, 그가 부모님을 떠나 처음으로 자기 믿음으로 서게 된 곳이었습니다. 이제 벳엘은 야곱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의 평생에 하나님을 만난 곳, 하나님의 집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함께하여 주십니다. 그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모두가 그를 떠났을 때, 처음 시작해야 할 때 그와 함께해 주십니다. 저에게는 이곳 관악 캠퍼스가 벳엘이었습니다. 곳곳에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함께 예배 드렸던 이들은 다 떠났지만 지금도 그 자리마다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은 14동 지하입니다. 인문대 14동 지하에 가보면 인문대 기독인연합방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재건축하면서 그 건물 자체는 사라졌습니다. 그 시절 모임을 하다보면 찬양 소리 때문에 위에 교수님들한테 시끄럽다 혼나기도 했습니다. 동아리 방이 습기가 차고 곰팡이도 피었고 낡은 방이었지만 거기서 예비를 드렸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몇 명 모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때 만난 선배들 도움으로 전공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과를 가야 할지 방황할 때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 중앙도서관도 생각납니다. 물론 공부에 대한 추억은 아닙니다. 제가 동아리 후배를 청년 공부하면서 돌볼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가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20대 초반이었고 그 친구도 이제 스무 살이었습니다. 제가 그 후배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줄 만한 능력이 저에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집중해서 이 후배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시험기간 때였는데 물론 시험기간 때는 기도도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도 주셨습니다. 도서관에서 그 후배에게 꼭 맞는 책을 발견하게 하신 겁니다. 물론 그 후배에게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저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 이곳 도서관에서도 이곳 서가에서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구나. 이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녹두거리도 생각이 납니다. 5년간 살았던 CCC 사랑방도 생각나고 또 가끔 기도하러 갔던 신림교회에도 떠오릅니다. 밤중에 가보면 늘 누군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도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의 기도소리로 교제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함께했던 친구들, 또 말씀을 준비하면서 수업을 들었던 이들과 이제는 어머니가 된 친구들, 또 아저씨가 되어버린 친구들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그중에 어떤 친구는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게 선교하라고 중국어를 가르쳐주던 중문과 선배도 그렇게 주님 품에 쉬고 있고 또 당차고 씩씩하게 지냈던 국악과 친구도 지금은 천국에 있습니다. 휴대폰에 이름은 남아있지만 차마 지우지 못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아니 이름도 모르지만 예배 자리에서 눈으로 인사했던 이들도 생각이 납니다.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이곳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함께 주님의 이름을 불렀던 이들, 예배 드리며 서로의 삶을 나누었던 이들,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이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면 함께할 수 없었던 이들인데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고향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드린 기도가 생각이 납니다. 20대에, 저의 인생에 가장 빛나는 시간에 주님께서 함께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30대가 넘어가고 또 40대가 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지금 40대인데 그래도 살만합니다. 물론 그때는 20대가 전부라고 느껴졌습니다. 내 인생의 11조, 아니 내 청춘의 11조, 20대의 1년이라도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길, 주님께서 나의 시간을 써주시길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저 나름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추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물론 20대를 마치고 30대는 이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그저 이력서에 한 줄 적을 때 여기를 다녔다는 것을 떠올릴 뿐 잊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피한 적도 있었습니다. 왜 그런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작년 서기연 개강예배 강사로 오게 되면서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연락이 안 되던 사람들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소식이 끊겼던 이들도 보게 되었고 안부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잡아당기는 힘에 이끌려 가다 보니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입학한 지 21년 만에 다시 녹두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대학 종교의 목사로 캠퍼스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아들과 그리고 딸과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야곱도 벧엘에 다시 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28장에 벧엘을 들렸지만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결혼하고 자식도 낳고 그렇게 일가를 이룹니다. 그리고 외삼촌 집을 떠나 창세기 35장에 보면 다시 벧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야곱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족도 있고 재산도 있습니다. 중년에서 벗은 야곱은 벧엘을 떠나 있었지만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이 그를 초대하여 주셨습니다. 청년 야곱을 부르신 주님께서 그를 다시 불러주십니다. 35장 1절 말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 하나님은 청년 야곱을 맞아주셨고 이제 중년의 야곱도 다시 반겨주셨습니다. 그가 형에게 쫓길 때 나타나실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의 위기 가운데 등장하신 겁니다. 벧엘은 그래서 야곱에게 특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벧엘 없이 설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응답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의 여정에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 가운데 늘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벧엘로 올라가게 될 때 그의 믿음은 새로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늘 함께하셨지만 벧엘에서 그를 맞아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추억이 서린 벧엘에서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 가운데 졸업생도 있을 겁니다. 재학생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미 캠퍼스에 수많은 추억이 서려있을 겁니다. 저 꼭대기에 있는 윗공대부터 아랫공대, 그리고 자연대와 농생대, 아크로, 그리고 중도 뒤쪽에 있는 약대와 생과대, 음대와 미대, 행정대학과, 지금은 사라진 법대, 그 옆에 사회대와 그 옆길로 있는 경영대, 그 너머 치대와 수의대, 그 모든 곳에 저마다의 추억이 담겨있을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불렀던 장소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다시 이곳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은 캠퍼스를 떠났지만 여전히 주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반겨주십니다. 아마 오랜만에 온 졸업생들은 느꼈을 겁니다. 여기 곳곳에 우리가 드린 기도, 우리가 부른 찬양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캠퍼스 한 구석에서 기도 소리가 이어지고 있고, 강의실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여기 모여 주님께 예배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집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맞아주셨습니다. 여기 주님의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계십니다. 이 밤에 드린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실 겁니다. 물론 이 밤이 지나 여러분들은 캠퍼스를 떠나게 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하며 정신없이 살아가게 될 때에도 벧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해주실 겁니다. 그리고 이제 막 대학생을 시작하는 신입생 여러분, 그리고 재학생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기도 드릴 때 주님께서 만나 주실 겁니다. 지금껏 여러분이 경험하지 못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실 겁니다. 조금은 투박하고 초라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화려한 음악도 없고 몇 명 모이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 은혜가 있을 겁니다. 이곳에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주 수업을 듣게 되는 강의실, 그저 지나치던 건물들, 그리고 중도와 학관 곳곳에서 하나님이 만나 주실 겁니다. 남들이 볼 때는 차갑고 황량한 캠퍼스지만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중도의 가파른 계단이 힘들게만 느껴지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하늘로 향하는 계단이 될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당신과 나의 벧엘입니다. 이곳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벧엘입니다. 벧엘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가장 빛나는 때를 더욱 아름답게 빚어 주십니다. 이곳 벧엘에서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벧엘의 하나님, 여기 캠퍼스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황량한 곳에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새로운 길을 가는 자들에게 동행하여 주시고 돌아온 자들에게는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입술에 믿음의 언어를 심어주사 결단하게 하시고 잃어버린 기도의 언어를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전에 드렸던 그 기도가 생각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이곳이 벧엘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당신과 나의 벧엘, 하나님과 우리의 벧엘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함께 다시 길을 가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