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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transcription is a sermon discussing the story of Jesus healing the blind man Bartimaeus in the city of Jericho. The speaker highlights how Bartimaeus recognized Jesus as the Messiah and had faith in him, while the disciples failed to truly understand Jesus and his mission. The sermon encourages listeners to call upon Jesus with a sincere heart and follow him faithfully. The speaker also offers prayers for the campus community and for those who are traveling or living far away. The sermon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recognizing Jesus as the true path and seeking salvation through him.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성경 마가복음 10창 46절부터 5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메오의 아들인 맹린거지 바디메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이르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대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며 맹인이 거둣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대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아멘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인 바디메오를 고치시는 장면입니다. 마가봄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 사역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디메오를 고치심으로 갈리 사역과 여행기가 마무리되고 11장부터는 예루살렘 사역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북쪽 가이사렘 빌리포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여리고에 일어났습니다. 우리로 치면 경부고속도로로 서울을 올라올 때 서울 요금소 부근 근당정도가 여리고라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가까워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렸습니다. 그분이 왕이 되신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께 잘 보이려 했을 겁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한자리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득실됐을 겁니다. 거기에 제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순환예고를 3번이나 하셨지만 제자들의 속셈은 달랐습니다. 자기들끼리 누가 높은지 따지며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눈앞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만 함께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기 욕망의 종착지가 예루살렘일 뿐 십자가를 지러 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 누군가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맹인거지 바디메오가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시란 말을 듣고 그분을 불렀던 겁니다. 그런데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릅니다.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믿은 겁니다. 사람들이 그를 제지했지만 그가 더 크게 소리쳐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때 맹인은 자기 거조솔을 버리고 예수님께 갑니다. 어쩌면 바디메오에게 거조솔은 유일한 재산이었을 겁니다. 이를 내버려 두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 달려가느라 동양그릇이 어디로 굴러갔는지도 모르고 뛰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라 뛰어본 적이 없었을 겁니다. 이리 허우져 저리 허우져. 그저 예수님 계신 곳 저기 소리 들리는 것으로 휘청거리며 달려갔을 겁니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이 물어보십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 바디메오는 몇 푼의 적선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기를 원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능히 보기하실 수 있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디메오는 이처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친 사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십니다. 자신은 십자가를 찌러 가야하니 너는 너의 길을 가라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바디메오는 눈을 뜨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자신이 평생 동량하던 그 자리를 벗어나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마가복음은 길에서 따르다 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제자가 되는 모습을 묘사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바디메오는 여리고 있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바디메오의 모습은 제자들과 대조됩니다. 제자들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세 번이나 순환을 말씀하셨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8장에 처음 고난받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빛세다에서 맹인을 고치십니다. 빛세다 맹인 치유와 오늘 여리고에서 맹인 바디메오 치유를 통해 그 속에서 헤매고 있는 제자들 앞을 보지 못하는 제자들과 대조하고 계십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부르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진 것은 초대교회가 그의 믿음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기억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뭔가 갖춰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준비만 하다가 머뭇거리다가 예수님을 따를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그분을 불러야 합니다. 어쩌면 오늘이 내게 주신 마지막 기회로 여기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실 겁니다. 엉거주춤하면서 뛰어오는 바디메오 그 거돗조차 기지치 않고 달려오는 모습은 예수님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구원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늘 편안하고 익숙한 여리고 성벽 및 어느 동양자리에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를 때 주님께서 우리 영혼의 소망을 들어주실 겁니다. 우리를 그분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겁니다. 우리의 닫혀진 눈을 뜨게 하자 진리를 보게 하여 주실 겁니다. 오늘 하루 주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그 길에 함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기 원합니다. 더 이상 거돗을 붙잡고 동양그릇을 붙잡고 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주님을 바라며 주님께 달려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에 눈 멀었던 저희들 눈이 뜨여 참 진리되신 주님을 뵙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사명으로 주신 캠퍼스를 위해 기도합니다. 어제 개강예배를 통해 주님 은혜에 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캠퍼스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늘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성교센터 그때를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을 통해 새학기 각과 모임과 성교단체 모임들이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상주 수련장을 기억하여 주시고 예배 드릴 때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청년들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학업과 진로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고 그들의 젊은 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에게 결혼의 문을 열어주시고 믿음의 가정도 세워가게 하여 주옵소서. 태의 열매를 허락하자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독신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주님께서 돌보사 그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여 주옵소서. 청년들을 섬기는 목사님 기억하여 주시고 그 사랑의 수고에 주님 복내려 주옵소서. 성도들의 삶을 돌보아 주옵소서. 직장으로 출근하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오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 주옵소서. 직장에서도 업무에 취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어진 일들을 지혜롭게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가정을 돌보는 자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위에 끼니를 준비할 때 감당할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붙잡아 주시고 넘어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연약하신 어르신들 함께하여 주시고 주님의 풍류를 얻게 하여 주옵소서. 먼 곳에 있는 주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행 중인 이들 군복무 중인 이들 유학 중인 자들과 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돌아오는 그날까지 함께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나온 꼰속들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성도들을 붙잡아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