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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4 새벽기도회

240214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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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oday's passage from the book of Mark, Jesus enters a synagogue on the Sabbath and heals a man with a withered hand. The Pharisees and Herodians begin to plot how to kill Jesus. Jesus then retreats to the sea, followed by large crowds who have heard about the miracles he has performed. Jesus chooses twelve disciples and continues to preach and heal. The passage highlights the conflict between Jesus and the religious leaders regarding the observance of the Sabbath and the true nature of God's kingdom. Jesus prioritizes compassion and saving lives over rigid adherence to religious laws. He challenges the Pharisees and Herodians, showing that they are essentially the same in their hypocrisy. Jesus willingly faces opposition and continues on his mission to proclaim the kingdom of God. The passage ends with Jesus appointing the twelve disciples, symbolizing a new Israel, a new people of God.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성경 마가복음 3장 1절부터 19절까지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3장 1절부터 19절까지 말씀입니다.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내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당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동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예수께서 무리가 애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이는 많은 사람들을 꼬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습니다라.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시져 이류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라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라.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구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리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메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데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마가복음 2장과 3장에서는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격과 관련된 논쟁이 제시되는데 그 마지막 논쟁이 3장 전반부에 있습니다. 3장 6절까지 논쟁 기사가 마무리되면 7철부터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시는 내용이 이어지게 됩니다. 3장 전반부에 나오는 마지막 논쟁은 안식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나옵니다. 뻔히 보이는 함정입니다. 이 사람이 섭외되어 온 건지 아닌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시는지 확인하려고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할 거리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헤아리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안식일 준수에만 목을 메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긴다면 율법과 상관없는 가르침이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포로기 이후에 안식일 준수를 그들 정체성의 핵심으로 여겨왔습니다. 성전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안식일 준수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어보십니다. 상담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물어보십니다. 당연한 대답이 나와야 하는데 사람들은 말하지 않습니다. 잠잠합니다. 그들은 선을 행하는 것, 살리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당장 규정을 지키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원래의 가치와 목적은 상실한 채 문자적인 준수 여부만 따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손마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를 살릴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만 신경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은 완악하다 여기십니다. 그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빌미삼아 예수님을 고소하려고만 하지 손마른 사람에 대한 자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내일 고치면 되겠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손이 말랐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는 오늘, 지금, 구원이 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이 될지, 먼 훗날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젠가 고쳐진다는 것은 이 사람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순간에 충돌을 무릅쓰고 고쳐주십니다. 살리는 것이 본질입니다. 옳은 일입니다. 그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조율을 통해서 타협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고통받는 자들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 고통마저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결국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6절과 같습니다. 6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바리세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단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이미 바리새인들은 마음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방식이 문제지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율법을 위협하는 자, 아니 율법주의와 그들의 위치를 흔드는 예수님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헤롯당이 나옵니다. 헤롯단은 종교인이 아닙니다. 바리세인들이 반로마주의자들이고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헤롯단은 친로마 성향의 세속 정치집단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룹이 예수님을 죽이는데 뜻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주의 종교인에게도 위협적이지만 세속적인 정치인에게도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실은 바리세인이나 헤롯단이나 한패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적대적인 것 같지만 실은 공생관계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처음부터 예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가는 곳마다 이 세상은 그분을 거부하고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지만 자기의 길을 가십니다. 8절부터 19절까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사약을 감당하십니다. 저들이 죽이려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피하지 않고 그 길을 가십니다. 13절부터 19절까지 예수님은 따로 열두를 세우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중에서 이들을 사도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열둘은 의도적인 숫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이어지는 숫자입니다. 구약의 야곱의 아들들 그리고 그들이 열두 지파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는 실패하였고 결국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세워지는 열둘, 열두 사도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이루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계십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충돌을 감수하십니다. 그 길이 십자가임을 알면서도 그 길로 나아가십니다. 복음이 복음답게 선포될 때 이 세상은 불편하게 여길 것입니다. 타협을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신 그 길,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도, 교회도, 좌고우면 하지 않고 살리는 길로 걸어가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본질에 집중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저런 사상과 현실의 문제로 타협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본질을 놓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여기 대학 전기회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이번 주 목요일부터 부서 겨울 성경학교와 수련회가 시작됩니다. 모든 자리 가운데 주님 임지하여 주시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순서가 안전하게 이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성교 후원회방과 기독인 오리엔테이션이 있습니다. 준비하는 모든 과정도 주님 은혜에 더하여 주옵소서. 또한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많은 학생들이 여기서 힘을 얻게 하시고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상주 수련장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셔서 능력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의 삶을 돌보아 주옵소서. 가정과 일터 어디에 있던지 주님 지켜주시고 또한 질병이 있는 성도들을 치유하여 주시고 거둥이 불편한 자들은 붙잡아 주옵소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단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는 좋은 일자리를 주시고 시험을 준비하는 자들에게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외우자를 구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운 만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결혼한 가정에는 태의 열매를 주시고 홀로 사는 이들에게도 우리 주님 가족이 되어 주옵소서. 멀리 있는 지체들도 기억하여 주옵소서. 유학으로, 주재원으로, 군 복무로 여러 상황으로 함께하지 못한 이들을 붙잡아 주시고 그들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권속들과 함께하여 주여서 이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돌아가는 발걸음도 지켜 주옵소서. 오늘 모든 순간에 주님 함께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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